Saturday, February 14, 2015

남겨진 자들

강정호 선수의 새로운 팀메이트, 해적선장 맥커친의 글입니다. 재키 로빈슨 팀의 실격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어른들이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꼼수를 부렸구나..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생각치도 못한 부분을 지적해 준 좋은 글이네요. 원문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주, 한 무리의 12살 어린이들이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시카고 남부의 재키 로빈슨 웨스트 팀은 (시카고 남부지역은 범죄발생률이 높은 빈민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주) 2014년의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미국 지역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정말 극적인 명승부였죠. 재키 로빈슨 팀의 투수는 결승전에서 네바다 팀을 상대로 역전홈런을 허용하고는 마운드에서 고개를 푹 숙인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팀은 추격을 거듭해 결국 믿기 힘든 역전승을 일궈냈고, 마지막 아웃을 잡았을 때 기쁨이 가득한 그 소년의 그 얼굴 표정은, 부러운 마음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습니다.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동안, 카메라는 사람들이 응원을 하기 위해 모인 시카고 남부의 한 체육관을 비췄고, 그들은 이 아이들과 그들의 지역사회를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이 스포츠가 아직 이런 빈곤한 지역에서도 인기가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던 수요일, 재키 로빈슨 웨스트 팀은 "외부 지역"에 거주하는 선수들을 기용했다는 이유로 우승을 박탈당했습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지만, 제게 한 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이 일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에 한줄기 빛을 비췄다는 것입니다. 그 전의 야구는 방망이와 공만 있으면 되는 스포츠였습니다. 가난한 어린이들이 가난을 벗을 수 있는 탈출구였죠. 하지만 이제 야구는, 경기를 하러 멀리 떠나는 경비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을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스포츠가 되어갑니다.



저는 플로리다의 포트 미드에서 자랐습니다. 그 동네는 문자 그대로 딱 하나의 신호등만 있었습니다. 몇 년전까지는 맥도날드도 없었고요. 하지만 야구장과 풋볼필드는 있었습니다. 전 많은 시간을 흙에서 뒹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죠. 재밌었어요. 처음 티볼이 놓인 타석에 들어섰을 때부터, 저는 켄 그리피처럼 방망이를 흔들려고 애썼어요. (티볼: 야구와 유사한 규칙이지만 투수가 던져주는 대신에 공을 제 자리에 놓고 치는 경기 *역주) 솔직히 저는 재능이 좀 있었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큰 캠코더를 들고 운동장에 나오셔서 제 티볼 경기를 녹화하시곤 하셨죠. 저는 저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제가 그 당시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 거짓말을 하시는거라고 줄곧 믿어왔었는데요, 몇 년 전 그 테잎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제가 공을 담장너머로 날려버리고 베이스를 미친 속도로 돌고 있더라고요. 잘하던데요.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제가 그 월드 시리즈에서 뛰던 아이들과 같은 나이인 12살이었을 때도 포트 미드 밖의 그 누구도 제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재능은 있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어떻게 유명해질 수 있을까요? 요즘은 수천불의 돈을 들여 큰 도시의 토너먼트에 나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줘야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저를 사랑했지만, 부모님이 열심히 일해서 겨우 밥값을 벌고 나면 남은 돈은 그리 많지 못했습니다. 일을 거르고 저를 주말 토너먼트에 데려가는 일은 고려대상조차 아니었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비디오게임을 사줄까? 아니면 새 야구방망이를 사줄까?"

제 나이 또래의 (야구에 소질이 있는) 소년들은 아마 플레이스테이션을 고를테고, 그러면 그게 다입니다. 그러면 끝이에요. 저는 항상 새로운 방망이나 글러브를 골랐습니다. 하지만 돈을 어떻게 긁어모으더라도 저희 가족에겐 저를 매주 집에서 한시간 정도 북쪽에 있는 레이크랜드의 큰 경기에 보내줄 돈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바로 많은 가족들이 마주하는 문제입니다. 100불짜리 방망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에 100불하는 모텔, 30불의 기름값, 그리고 300불에 달하는 토너먼트 참가비 문제에요. 자식들을 높은 단계의 토너먼트에 출전시키기 위해서는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존재합니다.

운이 좋게도, AAU의 지미 러틀랜드 감독님이 제가 13살일 때 올스타전에서 뛰던 저를 알아보시고 아버지에게 저를 팀에 보내서 같이 원정을 다닐 수 있냐고 여쭤보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저희 동네를 벗어난 적도 거의 없었어요. 저희 아버지는 감독님에게 그러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씀하셨고, 러틀랜드 감독님은 저를 마치 아들처럼 챙겨주셨습니다. 유니폼을 사게 도와주셨고 생활비를 대주셨어요. 저희 부모님은 저를 최선을 다해 돌봐주셨지만, 식비정도만 주실 수 있으셨죠.

하지만 이 이야기는 디즈니영화처럼 끝나지 않아요. 지미 감독님이 저를 알아보시자마자 제가 바로 최고단계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건 겨우 첫 단계를 밟은 것이었어요. 제가 이 곳에 오기까지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능력만 있는 가난한 아이라면,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수많은 멘토들이 각 단계마다 그 아이를 도와주는 기적같은 일이 필요해요. 킴 체리, 마이클 스캇 - 저를 자식처럼 여겨주신 수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외부의 어린이들을 모아 규정을 어긴 재키 로빈슨 웨스트 팀의 어른들을 비난할 때, 그 어른들은 그 아이들에게는 구세주였다는 것도 기억해야합니다. 그들이 바로 경기화를 사주고 경기후에 마실 프로틴 음료를 사준 어른들이라는 것을요.


가끔 저는 스카우트들이나 AAU의 코치들이 저를 어떻게 찾아냈나 모르겠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에요. 점점 더 좋은 팀에서 뛰기 위해 저는 용병처럼 뛰면서 사다리를 한계단 한계단 올라갔습니다. 레이크랜드 로드러너스에서 뛸 때 올랜도 레드레이더스에게 박살나던 기억이 나네요. 그들은 저희에겐 마치 프로팀 같이 느껴졌어요. 경기가 끝난 후, 그 쪽 코치가 와서는 저보고 그 팀에서 뛰고 싶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레드레이더스는 대단한 팀이었어요. 저는 마치 뉴욕 양키스에서 뛰게 된 듯한 느낌을 받았죠. 저는 로드러너스의 친구들을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음.. 나중에 보자!"

더 말도 안되는 건 뭔지 아세요? 야구하면서도 여러 부상을 입긴 했지만, 제가 15살 때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지 않았었으면, 저는 지금 메이저리그 선수가 아닐 것입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풋볼선수가 되려고 했어요. 왜냐고요? 돈 때문이죠. 대학교 1부리그의 와이드리시버가 될 수 있었다면, 전액장학금때문에 그 길을 택했을 겁니다. 플로리다 대학교는 야구 장학금을 제안했지만, 학비의 70프로만 커버되는 장학금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나머지 30프로를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얼마나 잘하든간에, 야구로는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죠.

많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운동도 더 배우고 공부도 하기 위해 대학교에 가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MLB 드래프트에 신청해 뽑히기를 기도하면서 주사위를 굴려야하만 하죠. 저는 운이 좋게도 파이어리츠에 1라운드에 뽑혔습니다만, 4년을 (마이너리그에서 뛰며) 윌리엄스포트, 히커리, 알투나와 인디애나 폴리스에서 보냈습니다. 재능있는 많은 아이들이 이런 생활환경을 플로리다 주립대나 오하이오 주립대의 삐까뻔쩍한 생활과 비교해보고는 이렇게 생각하죠. "그래, 공짜로 대학도 가고 ESPN에도 나올 수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5년동안 씨리얼을 저녁으로 먹어가면서 알투나에서 90마일짜리 속구를 치려고 발버둥칠 수도 있어."

사람들은 큰 규모의 계약금에 대해서 얘기하는데요, 저는 제가 이렇게 된 걸 분명히 축복받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17살의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마 5년간 마이너에서 뛰고, 방출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1년짜리 재계약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만불에서 오만불 사이의 연봉을 벌 수도 있죠. 보너스를 받을만큼 운이 좋다면, 그 돈을 아껴써서 잘 살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기억하셔야합니다. 드래프트에는 40라운드까지 있고요, 대다수의 선수들은 고생을 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3년을 뛰게 되면 그제서야 드디어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얻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6년째 되면 - 거기까지 버틸수만 있다면 - 처음으로 큰 계약을 맺게 되죠. 이런 복잡한 과정들을 겨우 식비만 벌어들이는 가정의 17살 소년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래, 아직도 야구가 하고 싶니?"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는 저말고 흑인 선수가 한 명 더 있습니다. 조쉬 해리슨이죠. 사람들은 저에게 왜 흑인선수가 점점 줄어드는지 물어봅니다. 야구가 템포가 느리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 관해 얘기하거나, 혹은 그 아이들이 집에서 그냥 오락이나 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는 많죠. 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여기에 인종과 상관없이 저소득가정의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 문제를 고치는 일은 복잡할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중남미에서 자란 야구선수들을 부러워했었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이나 푸에르토리코에서 자란 재능있는 선수라면, 어떤 팀이 그 선수에게 다가가서는 "5만불을 줄테니 계약을 하고, 우리 팀에서 너를 길러주고, 먹여주고, 여행비를 줄거야"라고 얘기할 테니까요. 가족들이 돈이 없어서 고생하던 14살의 저에게는, 그거면 모든게 해결됐을겁니다. 1초안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거에요.

그런 류의 시스템이 돈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재키 로빈슨 웨스트 팀의 "반칙"에 반발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열두살 선수들이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동네를 떠나 전국에 선을 보이는 자리에까지 가게 됐는지 관심조차 없습니다. 재정적인 격차를 메꿔준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마음을 올바로 먹은 믿을만한 사람들이길 바랍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죠.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과 얘기해보면, 거의 모든 한 명 한 명의 선수들이 자신을 도와준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는 항상 들리죠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나는 메이저리그에 오지 못했습니다."

재키 로빈슨 웨스트의 아이들은 어제 정말 최악인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마도 그들이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뛰는 것을, 필드위에서 영리한 플레이를 하는 것을, 혹은 야수 사이를 가르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쳐내는 것을 보았을 겁니다. 그 선수는 팀에서 최고가 아니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누군가 그 선수에게서 뭔가를 발견해내고는 다가가 이렇게 얘기할 것입니다 "저기, 우리 팀에서 뛰어줬으면 좋겠어." 그들은 그 아이에게 또다른 부모가 되겠죠. 그 아이가 가족을 떠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길, 훌륭한 야구선수가 될 수 있는 참을성을 가진 선수였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네브라스카의 옥수수밭이나 플로리다 중부의 진흙밭에서 뛰면서 아무 관심도 못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천명의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우린 이 선수들에게 그 동네를 탈출할 수 있는 더 좋은 (게다가 더 싼) 방법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앤드류 맥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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