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3, 2014

리베라에 대해 알아야 할 42가지

이번 Five facts의 주인공인 리베라를 보다보니 십수년간 양키스의 뒷문을 든든히 지켜주던 그의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불과 작년말까지만 해도 현역이었는데 되게 아련한 옛 기억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1년 넘게 지난 일인데도 그 때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하기도 한 복잡미묘한 감정입니다.

관련기록을 찾아보다가 눈에 띈 2013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실렸던 글입니다. 원문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양키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마리아노 리베라가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는 날은 다음주 일요일이 될 것이다.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시되는 가장 위대한 마무리투수의 커리어를 기념하기 위해, 리베라에 대해 알아야 할 42가지를 준비했다.

1. 그는 1969년 11월 29일 파나마의 파나마시티에서 태어났다. 리베라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이고 1960년대생중에 마지막까지 현역생활을 한 선수이다.

2. 그의 아버지의 이름도 마리아노이며, 푸에르토 카이미토에서 낚시배의 선장이다. 리베라는 (만) 16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의 배에서 일주일에 6일을 일했었다.

3. 어렸을 때 리베라는 정식도구가 아닌 주운 물건들로 야구를 했으며 버려진 카드보드지로 글러브를 만들고 나뭇가지와 빗자루 손잡이로 방망이, 둥글게 말아 테이프로 감은 낚시그물이 공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리베라가 12살일 때 처음으로 진짜 글러브를 사주었다. 리베라는 18살 때 동네 야구팀에 유격수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19살이 되기 전까지는 후보였으며 메이저에는 25살이 되어야 올라왓다.

4. 리베라는 1990년 2월 20일, 17살의 나이로 양키스와 3천불의 금액에 계약했다. 리베라는 영어를 전혀 못했으며 양키스가 그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전에는 비행기를 타본 적도, 파나마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었다. 리베라는 "나는 투수도 아니었다"라고 계약당시를 스스로 회상한다.

5. 리베라의 마이너리그에서의 첫 투수코치는 걸프코스트리그 양키스 코치 호이트 윌헬름이었는데, 윌헬름은 불펜투수로서는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던 사람이며 통산 최다세이브기록을 처음으로 갖고 있던 선수였다.

6. 리베라는 프로에서의 첫 시즌을 대부분 불펜에서 뛰었는데, ERA 타이틀을 위해 규정이닝을 채우려고 시즌 마지막날 더블헤더에서 선발등판하게 되었다. 그는 7이닝동안 안타를 하나도 맞지 않았다. 리베라는 1990년에 0.17 평균자책점, 0.46 WHIP, 8.29 K/BB와 함께 52이닝동안 58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7. 리베라는 1992년 8월 27일, 오른쪽 팔꿈치 UCL에 수술을 받았다. 잘못 알려진 기사가 많이 있는데, 토미존 수술은 아니었다. 인대가 약간 마모되었을 뿐이며, 1974년을 타미존 수술을 만든 프랭크 조브박사가 집도했다.

8. 리베라는 1992년 확장드래프트때 보호명단에서 제외되었지만, 말린스나 록키스는 그를 지명하지 않았다. 당시 드래프트에서 이른 순번에 지명된 선수는 우완 선발투수 데이빗 니드 (록키스)와 외야수 나이젤 윌슨 (말린스)였다. 니드는 4년통산 218.2이닝동안 5.47의 평균자책점만을 기록했고 팔 부상으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윌슨은 메이저리그에서 단 22경기만을 뛰었는데, 그 중 단 7경기만을 말린스에서 뛰었다. 플로리다는 대신 리베라가 기록을 깨기전 통산최다세이브 기록을 가지고 있던 트레버 호프먼을 뽑았는데, 호프먼 역시 601세이브중 단 2세이브만을 말린스에서 기록했다.

9. 리베라는 1995년 5월 23일 앤젤스를 상대로 선발등판하면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다. 그는 처음 상대한 두 타자, 토니 필립스와 짐 에드먼즈를 삼진으로 잡았지만 4회를 넘기지 못했다. 리베라가 3.1이닝동안 8안타 5실점을 하면서 양키스는 10대 0으로 졌다.

10. 리베라와 데릭 지터는 1995년 6월 11일 동시에 AAA로 다시 내려갔다. 그 날 리베라는 메이저리그 네 번째의 선발등판을 했었는데, 네 경기동안 평균자책점은 10.20이었다. "모는 절망했어요" 지터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탐 버두치에게 얘기했다. "우리는 거의 울었다고요!"

11. AAA로 내려간 후에, 6월 26일 선발등판에서 90마일 언저리이던 리베라의 속구가 갑자기 설명할수 없는 이유로 95마일까지 올라갔고, 이로 인해 다시 곧 메이저콜업이 되었다.

12. 다시 콜업된 후에 첫 선발등판은 7월 4일 시카고에서였는데, 리베라는 8이닝동안 삼진 11개를 잡으면서 2안타만을 허용하고 화이트삭스를 꽁꽁 묶어 팀의 4대 1 승리를 이끌었다. 다 합쳐서 리베라는 10번의 선발등판을 기록했는데 그 중 세번만이 퀄리티 스타트였으며 95년 후로는 선발등판한 적이 없다.

13. 리베라의 첫 구원등판은 1995년 8월 1일 양키스타디움에서였다. 그는 3대 2로 앞서고 있던 6회초에 루키투수 앤디 페팃을 구원등판했으나 곧바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리베라는 그 날 2이닝을 던지며 3안타 3실점을 허용했으나 양키스가 7회말 재역전에 성공하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14. 리베라가 미래에 위대한 선수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처음보인 것은 1995년 시애틀을 상대한 디비전 시리즈였다. 불펜투수로만 5.1이닝을 던진 리베라는 삼진 8개를 잡고 볼넷 1개와 3안타를 내줬고, 승계주자 여섯 명을 포함해 단 한 명도 홈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15. 양키스는 리베라가 만개하기 전 두 번이나 그를 거의 트레이드했다. 1995년 중반 단장 진 마이클은 타이거스의 데이빗 웰스와 리베라를 트레이드하려고 했지만, 리베라의 구속이 증가하자 그러지 않았다. 그 다음 해 봄,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루키 (지터)를 개막전 유격수로 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내자 새 단장 밥 왓슨은 트레이드 시장을 두드렸으며, 리베라를 시애틀의 유격수 펠릭스 퍼민과 바꾸려고 했었다.

16. 리베라는 1996년 웨틀랜드 앞에서 셋업맨역할을 수행하면서 최고의 투수중의 하나로 떠올랐다. 그 시즌에 리베라는 107.2이닝을 던지면서 2.09의 평균자책점 (240 조정방어율), 0.99 WHIP, 130 삼진 (10.9 K/9)을 기록하며 사이영상 투표 3위, MVP 투표 12위를 기록했다. 마무리가 아닌 중간계투가 리베라의 130 삼진을 넘어선 적은 없다. (이제 베탄시스가 넘었죠) 리베라는 그 다음해에 FA 자격을 얻어 레인저스로 떠난 웨틀랜드를 대신해 마무리가 되었다.

17. 1996년 4월, 리베라가 각각 3이닝씩 던졌던 세 번의 등판에 걸쳐 비공식 노히터를 작성했는데, 그 중에 두번째, 세번째 경기의 상대였던 미네소타의 감독 탐 켈리는 "그는 만일 더 상위리그가 있다면 거기로 보내야한다"고 얘기했는데 리베라는 그 후 17년동안 그런 얘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야구계에서 퇴출시켜야한다. 리베라가 던지는건 불법이다." 리베라는 이 노히터기록을 화이트삭스의 토니 필립스에게 안타를 허용하기 전 14이닝까지 늘렸다.

18. 리베라는 1996년 5월 17에 양키스타디움에서 앤젤스를 상대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이 경기의 승리투수는 페팃이었다. 리베라는 페팃의 72승을 지켜줬는데, 이는 선발투수/마무리투수 조합중에 최다이다.



19. 2년전 구속이 증가했던 것처럼, 리베라는 컷패스트볼의 발견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1997년 6월, 팀메이트 라미로 멘도자와 캐치볼을 하던 중 리베라의 속구가 왼쪽으로 휘기 시작했다. 15년간 야구계를 압도한 커터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리베라는 그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처음부터 알아차리진 못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커트에 대해 처음에는 그걸 그렇게 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리베라와 그의 커터그립

20. 리베라는 1997년 처음으로 올스타에 뽑힌 것을 포함해 13번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리베라보다 올스타에 많이 선정된 투수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워렌 스판이 (14회) 유일하다. 리베라의 올스타전 통산 4세이브는 역대 최다이다.

21. 리베라는 양키스 마무리투수로 뛴 첫 해에 커리어에서 최다인 9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추가로 인디언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도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리베라는 2대 1로 앞서고 있던 8회 원아웃 상황에서 등판했는데, 아웃카운트 다섯개만 잡으면 챔피언십시리즈로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은 후 샌디 알로마 쥬니어가 동점홈런을 날렸다. 9회에 등판한 멘도자가 패전투수가 되었고, 양키스는 그 다음날도 패배하면서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다. 알로마의 홈런은 리베라가 포스트시즌에서 던진 141이닝동안 허용한 단 두 개의 홈런 중의 하나이다 (2000년 월드시리즈 2차전 메츠의 제이 페이튼이 다른 하나를 쳤다,)

22. 알로마에게 홈런을 허용한 이후, 리베라는 2000년 ALCS 6차전에서 한 점을 내줄 때까지 포스트시즌에서 23게임 33.1이닝동안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화이티 포드가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세운 포스트시즌 33이닝 연속무실점기록을 깬 것이다.

23. 리베라는 1998, 1999, 2000, 2009 월드시리즈의 마지막 아웃을 잡았다. 다른 어떤 선수도 세 번 이상 월드시리즈의 마지막 아웃을 잡은 적이 없다. 그 네 번을 포함해 리베라는 16번의 포스트시즌 시리즈를 마무리했는데, 그 중 8번은 세이브 기회에서 올라온 것이다.



24. 리베라가 월드시리즈에서의 마지막 공을 던진 것은 사실 다섯 번이다. 2001년, 리베라의 마지막 공은 다이아몬드백스의 루이스 곤잘레스가 전진수비하던 내야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를 만들어냈고, 애리조나는 이 점수를 결승점으로 7차전에서 3대 2 승리를 거뒀다. 이는 리베라의 96번의 포스트시즌 등판중에 유일한 패전경기이다.

25. 리베라는 포스트시즌에 47번의 세이브 기회에서 단 5번만을 실패했는데, 하지만 그 중 네 번은 세이브를 기록했다면 양키스가 시리즈를 이길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해 내준 시리즈에서 나왔다. (1997년 디비전시리즈, 2001년 월드시리즈, 2004년 챔피언십시리즈 두 번)

26. 리베라는 두 번이나 3+이닝 무실점투구를 하면서 양키스가 연장전에서 승리할 수 있게 도왔다. 가장 유명한 경기는 역시 2003년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일텐데, 이 경기에서 양키스는 11회말 애런 분의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했다. 처음 포스트시즌에 등판한 1995년 디비전시리즈 2차전에서, 12회에 등판한 리베라는 3.1이닝동안 무실점투구를 했고 짐 레이리츠가 15회말에 끝내기 홈런을 치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애런 분이 홈런을 치자 마운드로 달려가 기쁨을 만끽하는 리베라

27. 리베라는 월드시리즈 (1999), 리그챔피언십시리즈 (2003), 올스타게임 (2013)에서 각각 MVP를 탄 유일한 선수이다.

28. 리베라의 포스트시즌 기록은 최다게임 등판 (96, 2위는 제프 넬슨의 55) 뿐만 아니라 최다세이브 (42, 2위는 브래드 릿지의 18)와 최저평균자책점 (0.70, 30이닝 이상 기준). 리베라는 16년동안 포스트시즌에서 던졌는데 단 두 해만 (2000, 2001) 2점 이상 허용했다.

29. 리베라는 2009년 6월 28일 시티 필드에서 통산 500세이브를 돌파했는데, 그 날 어쩌면 더 대단할지도 모를 또다른 기록을 세웠다. 메이저리그통산 단 7타석만 들어선 리베라는 그 날 9회초 만루상황에서 메츠의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즈를 상대로 볼넷을 얻어내 최초이자 유일한 타점을 기록했다.

30. 1995년 함께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리베라, 지터와 호르헤 포사다는 2010년, MLB, NFL, NBA, NHL을 합쳐 최초로 16년 연속으로 같은 팀에서 뛴 세 명이 되었다. 포사다가 2011년을 마치고 은퇴하면서 이 기록은 17년에서 멈췄다. 같은 팀에서 제일 오래 같이 뛴 두 명 기록은 리베라와 지터가 19년 연속으로 함께 뛰면서 타이거스의 키스톤 콤비 앨런 트람멜, 루 휘태커과 타이를 기록했다.

31.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리베라의 연봉은 15밀리언달러였는데, 아직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최고로 남아있다. (올해 로벗슨이 퀄리파잉 오퍼를 수락했으면 깨졌겠죠) 리베라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의 3년계약기간동안 1.64의 평균자책점, 0.80 WHIP과 6.69 K/BB을 기록하며 평균 39세이브를 기록했는데, 계약만료가 된 후 최소 다른 한 팀으로부터 더 큰 오퍼를 받았고 레드삭스에서도 그만큼을 준다고 들었지만 양키스에게 더 큰 금액을 요구하지 않고 양키스에 남았다. 그는 그냥 간단히 같은 연봉에 도장을 찍었다.

32. 리베라는 2011년 9월 19일 양키스타디움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1이닝을 완벽히 던지며 6대 4 승리를 지키고 통산 602번째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역대기록을 갈아치웠다. 그 기록의 달성의 순간 리베라는 트윈스의 1루수 크리스 파말리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웠다.



33. 리베라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롤리 핑거스 (341)과 구스 고세지 (310)의 세이브를 합친 것보다 많은 세이브를 (652) 기록했다. 경기를 마무리한 949번도 메이저리그 통산 역대기록이며 1,111번의 상대타석은 4위 (우완 1위)에 랭크되어있다.

34. 현재 리베라의 기록에 가장 위협이 되는 선수는 브레이브스의 25살투수 크렉 킴브럴이다. 현재 137세이브를 기록하고 있는 킴브럴이 지금 페이스대로 1년에 45세이브씩을 기록한다고 해도 2024년이 되어야 리베라의 기록을 깰 수 있다. (킴브럴은 원문 작성시점이후 2013년에 2세이브, 2014년에 47세이브를 추가하여 통산 186세이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35. 대단한 것은 리베라의 세이브중 119개가 1이닝보다 더 많은 투구를 기록한 것이라는 점이다. 1996년 이후, 이미 은퇴한지 오래된 키스 폴크가 55개로 멀티이닝 세이브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동안 리베라는 포스트시즌에서만 추가로 31개의 멀티이닝 세이브를 기록했고, 그 중 14개는 6아웃 이상을 잡아낸 것인데, 둘 다 포스트시즌 역대 최다기록이다. 구스 고세지가 7개의 멀티이닝 세이브와 6개의 6아웃 이상 세이브로 두 부분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36. 1000이닝 이상 투구한 투수중에서, 리베라는 커리어 조정방어율 1위 (204), WHIP 3위 (1.00)그리고 K/BB 4위 (4.09)를 기록하고 있다.

37. 리베라는 2012년 5월 3일 캔자스 시티와의 원정경기전 외야에서 배팅프랙티스 공을 잡다가 오른 무릎의 ACL이 찢어진 후 은퇴를 고심했으나 복귀를 결정했다. 그는 2012년 잔여시즌을 출장하지 못했다.

38. 리베라는 야구 역사에서 19년 연속으로 한 팀에서만 뛴 여섯 번째 선수이며,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두번째이다 (처음은 오리올스의 짐 팔머,) 구원투수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39. 리베라가 97년부터 양키스의 마무리투수가 된 이후, 양키스는 딱 한 명의 다른 투수를 주전 마무리투수로 사용했는데, 리베라가 부상이었던 2012년 마무리를 맡은 라파엘 소리아노가 그 투수이다. "주전 마무리투수"를 한 시즌에 20세이브 이상 거둔 선수라고 정의한다면, 다른 29 팀은 지난 17년간 평균적으로 7.5명의 주전 마무리선수를 가졌는데, 트레버 호프먼이 뛴 파드레스 (4명)이 최소, 브루어스, 말린스, 필리스가 각각 10명으로 최다이다.

40. 리베라는 한시즌에 20세이브 이상을 16번 기록했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기록이며, 30세이브 이상 15번, 40세이브 이상 9번 (호프먼과 타이), 50세이브 이상 2번 (에릭 가니에와 타이)도 모두 기록이다. 1997년 이후 리베라를 제외하면 157명의 투수가 2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는데, 그 중 69명은 커리어에서 단 한 번만 2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다.

41. 1998년 월드시리즈에서 트레버 호프먼의 등장음악인 AC/DC의 “Hells Bells”를 들은 양키스는 리베라에게도 어울리는 등장음악을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1999년초 Guns N' Roses의 “Welcome to the Jungle”이나 “Paradise City”를 시도한 끝에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으로 결정했다. 당시 그 노래는 8년이나 된 노래였지만, 리베라는 그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었으나 몇 년간이나 가수이름과 노래제목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종류의 음악은 잘 듣지를 않아서요" 리베라는 2006년 메츠의 새로운 마무리투수 빌리 와그너도 같은 노래를 등장음악으로 사용하면서 생긴 팬들사이에서의 논쟁과 관련해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5년후에 리베라는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그 노래를 안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만 별로 크게 신경쓰진 않아요. 제가 고른 노래도 아니고요. 등장음악에 신경쓰진 않아요. 제가 등판할땐, 전 할 일을 하러 가는거니까요. 전 해야되는 일이 있고요, 그게 다입니다."라고 얘기했다.



42. 리베라는 그의 커리어내내 42번을 입었고, 42번을 입는 마지막 선수가 될 것이다. 그 등번호는 1997년 4월 15일, 재키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전구단 영구결번이 되었다. (그 날 리베라는 9번째 세이브를 기록하지 못하고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리베라는 당시 42번을 달고 있던 14명의 선수중 하나였고, 따라서 남은 커리어동안은 그 번호를 계속 달 수 있었다. 리베라를 제외한 선수중 마지막까지 42번을 달은 선수는 2003년 시즌 후 은퇴한 모 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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