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25, 2015

SABR day





야구팬들에게 세이버메트릭스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닐 것입니다. 이 단어는 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 (미국야구연구협회)의 앞글자를 딴 SABR(세이버)에서 유래했는데요, 1월 24일은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세이버 데이"였습니다. 모든 야구팬들이 어디 사는지에 관계없이 같은 날에 모여서 야구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세이버 데이는 해마다 규모가 커져 올해는 미국 전역 30여곳에서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한 도서관에서 있었던 뉴욕지부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후 프로그램에만 참석할 수 있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오전에는 1975년 흑인 최초로 프랭크 로빈슨이 메이저리그 감독에 오른 지 40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순서로는 메이저리그 공식 기록원 빌리 앨트먼씨와 조던 스프레치먼씨를 초청해 그들의 기록원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인야구에서 기록원을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습니다만 야구를 보다 보면 기록이 애매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타구가 안타인지 아니면 실책인지. 이 번트가 희생번트였는지 아니면 안타를 노린 기습번트였는지 등등 말이죠. 2013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뉴욕 양키스의 경기, 1사 3루에서 토론토 선수가 외야플라이를 쳤습니다. 공을 잡은 우익수 이치로가 홈에 송구를 뿌렸고, 아웃되기에 충분한 타이밍이었지만 포수 크리스 스튜어트가 공을 받고 태그하는 과정에서 공을 놓쳤고, 당시 기록원이던 앨트먼씨는 이치로에게 어시스트를, 스튜어트에게 에러를 주었다고 합니다. 해설을 하던 폴 오닐은 스튜어트에게 준 에러에 관해 "와, 이 기록원은 정말 깐깐한 선생님 같군요"라고 했다는데요, 실제로 앨트먼씨는 기록원 일을 하기 전에 수십 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기록원은 메이저리그 팀에 소속된 것이 아니고, 메이저리그 사무국 소속입니다. 한 경기를 기록하면 사무국으로부터 125불을 받는다고 하네요. 기록원 일은 주로 세 단계로 이뤄지는데요, 첫 단계는 당연히 기록을 하고, 이를 표시하는 일입니다. 앨트먼씨는 90퍼센트의 플레이는 결정이 아주 손쉽지만 10퍼센트정도 애매한 경우가 생긴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경우도 대부분 정해진 룰이 있어서 그에 따르고요, 몇몇 특수한 경우만 기록원 재량에 맡긴다고 합니다. 스프레치먼씨는 경기마다 기록원이 단 한 명인데 그런 특수한 경우에 판정을 내리는 것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모든 판정이 쉬웠으면 이 직업이 필요없었을 것이라면서 자신이 아는 한도내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두번째 단계로 경기가 끝나고 나면 박스스코어를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라인업을 채우고, 승리투수, 패전투수등을 기록하는 등,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일이라고 하네요. 그 후에는 엘리아스에게 그 기록지를 팩스로 보냅니다. 엘리아스에서는 mlb.com의 기록과 대조를 해보고, 규정에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데요, 작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처음에는 매디슨 범가너가 승리투수로 기록되었지만, 엘리아스와의 논의 끝에 규정 10.17에 의거, 세이브투수로 수정된 경우가 바로 이 경우입니다.

마지막 단계로는 며칠 간 어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작년에 다르빗슈가 퍼펙트게임을 이어가던 중 데이빗 오티즈가 우익수와 2루수 사이에 떨어지는 타구를 기록했는데, 기록원이 에러를 주었습니다. 이에 오티즈가 어필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져 안타로 정정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다르빗슈는 9회에 안타를 맞아 오티즈의 타구와 관계 없이 노히트는 깨졌습니다) 어필은 선수, 코치, 감독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12년 닉 존슨이 친 타구가 좌익수를 보던 에두아르도 누녜즈 쪽으로 향했는데, 공이 어디로 갔는지 놓친 누녜즈는 결국 공을 받지 못했고 에러를 받았습니다. 존슨은 2루타가 아니냐며 어필을 했는데요, 당시 닉 존슨은 28타수 무안타의 슬럼프에 빠져있었기때문에 그 판정 하나가 더 아쉽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에는 5인으로 구성된 커미티가 어필심사과정을 거쳤지만 요즘은 Chief Baseball Officer인 조 토레가 결정을 한다고 하고요, 통계적으로 어필의 1/3정도가 받아들여졌다고 하네요.

기록원들은 경기가 가장 잘 보이는 두번째 줄에 앉는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르지만 오늘 참석한 두 기록원들은 1년에 60경기에서 100경기정도를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스프레치먼씨는 이 직업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를 꼽았는데요, 실제로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뚝딱 홈런이 나오고 경기가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 야구의 매력이니까요. 앨트먼씨도 이에 동의하며 경기가 끝나고 박스스코어를 적기 전 5분 남짓의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3시간 이상을 경기에 집중해야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데릭 지터가 3천안타를 기록하던 순간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텐데요, 데이빗 프라이스를 상대로 홈런을 치면서 3천번째 안타를 기록했던 그 경기의 기록원이 바로 스프레치먼씨였습니다. 이 경기의 박스스코어 기록지 원본은 명예의 전당에 있지만, 오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스프레치먼씨가 사본을 몇 장 가져왔습니다. 순서가 다 끝난 후 원하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했는데, 운좋게도 제가 받았습니다.

복사야 수십, 수백장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금전적인 가치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지터가 그 홈런치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는 저 같은 양키팬에게는 정말 기쁜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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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에 앞서 막간의 시간을 이용한 퀴즈 시간이 있었습니다. 뉴욕지부모임에 걸맞게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와 브루클린 다저스, 뉴욕 자이언츠 관련 문제가 나왔는데요, 2000년도 메츠와 양키스가 월드시리즈에서 붙었던 서브웨이시리즈에서 메츠 소속으로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좌완투수는 누구인가? (존 프랑코; 많은 사람들이 앨 라이터를 꼽았습니다) 1996년 데릭 지터는 퍼펙트게임을 기록하기도 했던 이 투수를 상대로 커리어 첫 홈런을 쳤는데, 이 투수는 누구인가? (데니스 마르티네즈) 양키스, 메츠, 다저스, 자이언츠의 팀 최다승 투수는 각각 누구인가? (화이티 포드, 탐 시버, 돈 서튼, 크리스티 매튜슨) 이런 질문들이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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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로는 베이브 루스 박물관 관장인 마이클 기븐스씨를 초청해 베이브 루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베이브 루스의 출생지에 있는 이 박물관은, 많은 야구팬들의 관광명소로도 손꼽힌다고 합니다.



기븐스씨는 박물관의 관장인 동시에 대학교에서 작문을 가르친다고 하는데요, 그의 학생들에게 베이브 루스를 아냐고 물었을 때 26년간 나이지리아에서 온 딱 한 명만이 베이브 루스를 모른다고 했답니다. 이렇게 단순한 스포츠 선수를 넘어 미국의 슈퍼스타, 뉴욕의 상징이 된 베이브 루스에 대해 그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가 하는 업무 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베이브 루스 연구입니다. 국내에는 세이버라고 하면 빌 제임스나 빌리 빈을 위시한 분석야구만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실제로 세이버에서는 그 외에 역사 연구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븐스씨와 루스 박물관은 1000시간이 넘는 오디오 아카이브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무려 97살이 된 베이브 루스의 딸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 등이 실려있다고 하네요. 지난 1995년에는 베이브 루스의 탄생 백주년을 맞아 베이브 루스를 실제로 만난 사람 찾기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이는 굉장히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루스가 뛰던 1920~1930년대에는 야구장에 가야만 겨우 선수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힘든 노력 끝에 찾아낸 많은 이들은, 루스가 사람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었지만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편이었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고 합니다. 루스가 자주 가던 정육점의 아저씨는 루스를 가리켜 "어른의 몸을 가진 열두살의 소년"이라고도 했다네요.



베이브 루스는 레드삭스도, 양키스도 아닌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마이너리그 팀과 처음으로 프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구단주 겸 감독이었던 잭 던은 당시 미성년자였던 루스의 법정대리인이기도 했는데요, 이에 볼티모어 선이라는 신문이 조지 루스를 "던의 베이비 (아기)" 루스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일 주일도 안 되어서 모든 매체에서 루스를 베이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시절 신인 루스의 모습을 담은 카드는 무려 70만불의 가격이 붙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네요.




오늘을 위해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기븐스씨는 여러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루스의 당시 플레이가 담겨있는 귀중한 영상물도 보여줬고, 죽는 날에도 머리맡에 두었다는 십자목걸이도 보여줬습니다. 그 목걸이를 꺼낼 때 하얀 장갑을 꺼내 끼고 아주 소중히 다루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줬는데요, 월드시리즈에서 미리 담장을 가리키고 홈런을 예고한 후, 정말 홈런을 쳐버렸다는 일화가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 타구를 치기 전 외야쪽을 가리키는 영상물도 남아있고, 사람들의 증언들도 여럿 확보했다고 합니다. 영상을 보면, 외야쪽을 가리킨 후 우연히 좋은 공이 와서 홈런을 친 것도 아니고 바깥쪽 낮은 공을 쫓아가서 홈런을 날렸다고 하네요.



기븐스씨는 현재도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루스가 졸업한 St. Mary Industrial School (현 Cardinal Gibbons School)의 운동장 방향을 다시 루스가 뛰던 시절의 그것으로 돌려놓는 공사를 하고 있는데요, 칼 립켄 주니어도 이 공사에 관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물관도 지금 새단장중이며 6월 중순에 있는 양키스와의 경기에 맞춰 재개장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볼티모어에 들려 베이브 루스 박물관에 꼭 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븐스씨는 자신의 역할이 이런 소중한 유산을 잘 지켜서 후대에게 전해주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20년, 30년이 지나도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루스를 알고 그의 활약을 기억했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세이버 데이는 큰 박수와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내년 겨울엔 또 어떤 재미있는 시간이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많이 됩니다.

비즈볼 프로젝트 홍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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